[스크랩] 서울 새문안교회(1887년), 언더우드 선교사가 세운 우리나라 최초 조직교회
◇ 서울새문안교회 ◇
* 새문안교회는 1887년 9월 27일 밤, 서울 정동의 한 한옥에서 14명의 한인들이 모여 언더우드 목사의 주재로 그 자리에서 한인 1인에게 세례를 베풀고 2인의 장로를 선임함으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조직교회가 되었다. 1904년 10월 송순명 장로의 장립으로 한국교회 최초의 당회가 구성되었다.
| |
* 언더우드 선교사
|
* 언더우드 선교사 가족 |
|
|
* 박사 원두우 기념비 1927년 9월 21일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원두우(H. G. Underwood, 1859-1916) 목사의 서거 1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기념비이다. 한국 선교와 교육에 끼친 공헌을 기려 새문안교회 뜰에 새웠다.
| |
| |
|
|
1910. 5. 20 벽돌예배당 건축 |
|
* 종탑예배당(1949년) |
개축된 종탑예배당 모습(1957년)
|
* 새문안의 종(1953-1973) | |
|
* 현 예배당 |
|
|
* 1대 언더우드 목사 1884년 뉴 브런스윅 신학교 졸업, 1885년 한국 최초의 복음선교사로 입국 1886년 한국 최초의 고아원설립(경신학교, 연희전문학교로 발전) 1887년 9월 27일 한국 최초의 조직교회인 새문안교회 창립
| |
* 2대 차재명 목사 (한국인 담임목사 시대를 열다) |
* 3대 김영주 목사 |
* 고아학교 전경(1886년)
| |
|
|
* 고아학교 학생들(1888년, 앞줄 가운데가 김규식) |
|
* 언더우드목사 가족의 북부지방 전도여행(1890년대) 1888년 한국에서 결혼한 언더우드부부는 신혼여행을 겸한 서북지방 일대의 답사에 나섰다. 위는 서북지방 전도여행의 한 모습으로서 앞장 선 사람이 언더우드목사이며 가마 옆에 서 있는 어린이가 그의 큰아들 원한경이다. 앞의 가마 안에는 호튼 부인이 탄것으로 보이며, 뒤의 가마에는 양반집 규수가 타고 있어 이채롭다. |
* 송순명(宋淳明) 장로 새문안교회가 1890년 직접 운영하던 영신학교 출신의 새문안 토박이다. 송장로는 일명 "송신약"이라 불릴 만큼 신약성경 전 내용을 암송하였다고 한다. 언더우드목사의 권서인으로 성서를 판매하며 전도활동에 힘쓴 송장로는 특히, 영신학교 교사 당시 2살 아래인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를 전도하여 영신학교에서 신학문을 배우게 한 일은 유명한 일화로 전해진다. 안창호는 송장로의 전도로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1898년 영신학교에 입학해서 이 학교의 학생이자 접장으로 3년간 다닌 바 있다.
|
* 서경조 목사와 두 아들 1910년 장로교 최초 한국인 목사인 서경조 목사가 동사목사로 부임함.
|
* 서경조 목사 가족들 |
* 새문안교회 첫 주보 | |
* 1회 새문안유치원 졸업생(1930년) | |
* 새문안교회는 교회 창립 이후 교육과 선교, 사회교육 활동에 주력하였다. 새문안교회 창립의 모태인 ‘언더우드 고아원’이 1886년 5월에 개설 운영되면서 새문안 교육사업이 시작되었다. 이 고아원이 이후 영신학교가 되었고 1901년, 중등교육기관인 경신학교로 발전하였다. 또한 1929년 5월 ‘신문내 유치원’을 개원하여 어린이 유아교육을 실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
|
|
* 새문안의 종 1972년 완공된 현재의 예배당 건물 이전의 종탑 예배당에 설치되었던 종이다. 이 종은 원재한 목사(Rev. James H. Underwood)가 아버지 원한경 박사(Dr. Horce H. Underwood)의 부탁으로 뉴욕의 한 교회에서 사용하던 종을 구입하여 1950년 봄 배편으로 보냈으나 6.25 전쟁으로 분실되었다가, 1953년 부산의 한 창고에서 발견되어 사용하게 되었다. 종 설치 50주년을 맞는 2003년에 이곳에 복원하여 설치하였다. | |
* 전기 오르간 1960-70년대 예배 때 사용하였던 전기 오르간. 교회 창립 70주년을 기념하여 1957년 7월 1일 언더우드 목사의 가족이 기증하였다.
|
* 교회 학교에서 사용하였던 풍금 (1970년대) |
* 언더우드 타자기 - 언더우드 가문에서 운영하는 타자기 회사 이름이 언더우드이다. |
* 기네스 인증서 1996년 6월 18일 기네스협회에서 새문안교회가 한국 최초의 교회임을 인정하고 발급한 인증서. |
* 새문안교회는 부설기관으로 수양관, 어린이집, 언더우드 기념 교회음악교육원, 동작이수사회복지관 등이 있다. 국내선교, 해외선교, 북한선교, 의료선교 등의 선교활동과 봉사활동을 하고 있으며 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 새문안교회는 창립 이후 이 땅에 제일 먼저 세워진 ‘복음의 전당’으로 뿌리 깊은 신앙과 강렬한 선교 정신 및 연합 정신과 민족 역사 발전을 책임지는 교회로서 사명을 감당해 온 한국의 모교회이다.
* 새문안교회는 오랜 역사 가운데 여러 교회들을 개척하였다. 초창기 개척한 교회에는 1893년 곤당골에 교회 개척(현 승동교회), 1894년 연못골에 교회 개척(현 연동교회), 1896년 잔다리교회(현 서교동교회) 개척, 1906년 한강교회 개척(현 노량진교회) 등이 있다. 이후에도 수많은 교회들을 설립하거나, 설립을 지원해왔다. |
*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 1가 42번지
출처 : 한국 기독교회사( http://www.photohs.co.kr )
새문안교회
새문안교회는 1887년 9월 27일(화) 밤, 서울 정동의 한 한옥에 14명의 한인들이 모여 언더우드(H.G.Underwood) 목사의 주재로 그 자리에서 한인 1인에게 세례를 베풀고 2인의 장로를 선임함으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조직교회가 되었다.
새문안이란 돈의문(서대문)이 옮겨져 서울 성벽에 새 문이 났는데, 그 문 안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신문내예배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정동의 한옥에서 시작했다고 하여 정동장로교회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교회 설립 초기에는 언더우드 사저(私邸)(정동 13번지, 현재 예원학교 운동장 위치) 안의 사랑채인 일자형 한옥을 예배당으로 사용하다가 1894년에 일어난 갑오농민전쟁과 청일전쟁의 전화(戰禍)로 사회가 혼란해지면서 교인 수가 급증하자 지금의 시티은행 빌딩(서울역사박물관 맞은편) 자리에 예배당을 신축하면서 규모가 커졌다.
1904년 10월 송순명 장로의 장립으로 한국교회 최초의 당회가 구성되었으며, 1910년 5월 29일 현 위치에 예배당을 신축하여 이전하였다.
이 때 최초의 한국인 7인 목사 중의 한 분인 서경조 목사가 언더우드 목사의 동사(협동)목사로 있었다. 3ㆍ1운동 이후 1920년 12월 차재명 목사가 2대 담임목사가 되어 한국인 담임목사 시대를 열었다.
1944년 2월 3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김영주 목사는 1945년 해방을 맞아 교회 재건과 부흥에 전념하던 중 1950년 6ㆍ25전쟁 와중에 납북되었다. 1955년 12월 4대 담임목사로 강신명 목사가 부임하면서 안으로 교회가 부흥하고 밖으로 새문안교회의 위상이 높아졌다.
안으로 교회행정과 각종 교회조직이 정비되는 한편 1967년 9월에 언더우드 기념관이 준공되었고, 밖으로 농촌봉사활동과 의료선교활동 및 도시야학운동 등이 활발하게 추진되었다. 강 목사 부임 후 교인 수가 크게 늘자 1972년 11월 현재의 교회당을 신축하였으며, 1973년 4월 20일 《새문안교회 85년사》를 간행하였다.
1998년 언더우드기념 한국교회음악교육원 개원(3월), 동작이수사회복지관 운영(4월), 한ㆍ태선교관 헌당(태국, 치앙마이, 5월)이 있었다. 그 해 4월 김동익 목사가 별세하였다.
2000년 9월 6대 담임목사로 이수영 목사가 부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새문안교회 : 대한민국 개신교 교회이며'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서울노회 소속,
현 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 1가에 위치
새문안교회의 기타 연혁
독립운동 :
언더우드의 양자이자 새문안교회의 서기였던 김규식은 서재필 등의 영향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고, 새문안교회의 창립자였던 서상륜의 동생 서경조 새문안교회 협동목사의 아들 서병호도 상해에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친일 행적 :
일제 당시 새문안교회의 담임목사이던 차재명은 중일전쟁이 일어난 1937년 전국순회 시국강연에 참여하여 일제의 침략전쟁을 옹호하기도 했다.
1941년 4월 29일부터 30일까지 장로교 총회는 새문안예배당에서 '장로회여자신도대회'를 개최하고, '국민총력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연맹 여자부'를 결성하였다.
첫날은 새문안예배당에서 이른바 '천장절 봉축식'을 갖고, 총회연맹 이사장 곽진근 목사의 시국강연을 들었으며 이틑날에도 예배당에서 시국강연회를 가졌는데, 유각경은 천장절을 당하여라는 강연을 하였고, 곽진근은 '신체제의 기독교인'이라는 강연을 하였다. 일제 해군대좌 쿠로키는 '세계 대세와 우리 해군'이라는 강연을 하였다.
역대 담임목사/
- 제1대 : 언더우드 목사(1887~1916)
- 제2대 : 차재명 목사(1920~1941)
- 제3대 : 김영주 목사(1944~1950)
- 제4대 : 강신명 목사(1955~1979)
- 제5대 : 김동익 목사(1981~1998)
- 제6대 : 이수영 목사(2000~ )
기타 관련 인물/
우사 김규식은 언더우드 고아원 출신으로 새문안교회의 장로였으며, 도산 안창호는 언더우드 고아원의 접장(선생)이었다. 난파 홍영후는 찬양대원으로 활동하였다.
부가 설명 출처 : 다음 위키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