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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인과 전설

샤롱의꽃 2005. 7. 25. 03:01

 

시인과 전설(詩人和傳說) / 최종호


도대체 내 시(詩)가 어쨌다고

하긴 포크레인이 설칠 때부터

불도저도 함께 날뛰더니 결국

아파트는 애당초 틀려먹은 처소라고

시인(詩人)은 입을 닫아 걸었지


이따금씩 숨겨둔 자유를 꺼내

여태 밀고(密告)하지 않은 이유는

시인의 공화국과 혁명공약(革命公約)

시(詩)가 지배하는 그들의 헌법을

정녕 지지(支持)하기 때문이다


사랑방은 어디다 숨겼느냐고

투정하던 개똥같은 시절은 갔다

다락방에 숨긴 애틋한 정분을 찾아

동구(洞口) 밖에 별은 오지 않아

문설주 기다리는 보름달도 떠났어


하기야 아주 가끔이었지만

군고구마 군밤 군것질이 설치던

아주 튼튼한 전설이 있었노라고

시(詩)라도 떠들어야 하는데

입이 없는 시(詩)는 슬프다


시(詩)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달과 별빛이 촉광를 낮추고

추억처럼 청포도가 익어도

그토록 가난하게 살아왔는데

시인은 어쨌다고 입을 닫았을까


 
가져온 곳: [사랑의 연재시]  글쓴이: 최종호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