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포백작
박수서
빌딩이 갑작스런 테러로 주저앉는다.
아자작, 천지가 꺼지고
송사리 떼처럼 소름끼치는 번식력으로
날개 뼈를 쫙 펼치며 자근자근 공포를 씹는 백작이
짜자 잔 재난(災難) 속에서 기어 나온다.
쓱 웃다 흘러 들어가는 입술 안으로 금니가 번쩍,
샘 레이미의 앙각(仰角)이 팡팡 터지는 금빛을
둥글게 둥글게 무삭제 원판 공포로 심의를 마친다.
백작은 전후좌우를 가리지 않고 리도카인*에 흠뻑 취해
물개처럼 왕성하게 애드립까지 보여주다
쿵, 떨어진다.
그가 가장 무서워 하는 것은
공포를 공포로 입막음하는
사랑을 사랑으로 도둑질하는
필름 전부를 갉아 먹어도 결국 토해내는 공포,
끝내 주인공이면서도
단 한 컷의 까메오로 미분(微分) 되어지는,
백 편이 한 편 같은 극영화 안으로
검은 망또 휘날리며
공포 백작은 나타났다 사라진다.
*조루증, 발기력 감퇴 치료약제
시집 <흑백 필름 속에서, 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