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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공포백작/박수서

샤롱의꽃 2005. 7. 25. 19:54

 

공포백작

 

박수서

 

빌딩이 갑작스런 테러로 주저앉는다.

아자작, 천지가 꺼지고

송사리 떼처럼 소름끼치는 번식력으로

날개 뼈를 쫙 펼치며 자근자근 공포를 씹는 백작이

짜자 잔 재난(災難) 속에서 기어 나온다.

쓱 웃다 흘러 들어가는 입술 안으로 금니가 번쩍,

샘 레이미의 앙각(仰角)이 팡팡 터지는 금빛을

둥글게 둥글게 무삭제 원판 공포로 심의를 마친다.

백작은 전후좌우를 가리지 않고 리도카인*에 흠뻑 취해

물개처럼 왕성하게 애드립까지 보여주다

쿵, 떨어진다.

그가 가장 무서워 하는 것은

공포를 공포로 입막음하는

사랑을 사랑으로 도둑질하는

필름 전부를 갉아 먹어도 결국 토해내는 공포,

끝내 주인공이면서도

단 한 컷의 까메오로 미분(微分) 되어지는,

백 편이 한 편 같은 극영화 안으로

검은 망또 휘날리며

공포 백작은 나타났다 사라진다.


 


*조루증, 발기력 감퇴 치료약제


시집 <흑백 필름 속에서, 울고 있다>


 
가져온 곳: [나는 편집중이다.]  글쓴이: 시인 박수서 바로 가기